[ 문학산책 ]
제 목 – 삶의향기 – 학력보다 능력
기 고 – 곽정식 수필가
마음이 헛헛할 때면 남산을 찾는다. 며칠 전에는 남산 아래 장충단공원에서 충무로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하늘엔 뭉클뭉클한 먹구름이 나지막이 자리잡고, 그 뒤엔 하얀 구름이 솟아올랐다. 흑백의 구름들이 서로 겹치기도 비키기도 하면서 생기는 형상이 신묘한 느낌을 주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묵직함이 귀밑을 타고 내려왔다. 왠지 보폭이 커지고 헛기침이 나오기도 했다. 어쩌면 지난 밤 들었던 ‘안개낀 장충단 공원’의 멜로디와 가수 배호의 중저음이 흐린 하늘 아래를 맴돌아서인지도 모른다.
충무로에 다다랐을 때다. 골목에서 고소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출출하던 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붕어빵 메뉴를 여러 외국어로 소개하는 매대가 보였다. 붕어빵 한 판을 굽고 난 후 빈 틀에 기름을 바르는 사장님과 인사를 나눈 후, 동그란 의자에 앉았다. 갓 구워 낸 붕어빵을 한입 먹으며 사장님께 물었다. “붕어빵 냄새에 이끌려 왔습니다. 여기서 장사 하신 지는 오래되었나요?” “1997년 겨울부터니 30년이 되어가네요.” 30년이란 숫자에 감탄하며 사장님의 장사 신조를 들었다.
“손님이 우선이지요. 작은 가게지만 외관을 손님 취향에 맞추고 야간조명도 은은하게 했습니다. ‘앙꼬’도 처음엔 팥 하나였는데 피자와 김치를 추가했고요. 결제도 현금과 카드, 앱으로도 하시게 했지요. 철 틀에 바르는 기름도 고지혈증을 걱정하는 분들을 위해 몸에 좋은 것으로 바꿨고요. 얼마 전엔 위생을 고려해 제 머리도 짧게 밀었습니다.”
하나만 먹으려던 붕어빵을 종류별로 먹다 보니 얼추 한 끼가 됐다. 그때 한 여성이 들어와 사장님에게 “슈슈(아저씨) 니 하오?”라며 중국어로 인사하자 사장님도 중국어로 답했다. 산둥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유학 후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그녀는 이름이 ‘슈징’이라고 했다. 이곳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SNS에서 숨은 맛집을 찾다 알게 되었다고 했다. 붕어빵 맛이 어떤지 물었다. “중국인들은 간식은 ‘우취우눈(又脆又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야 한다는 말이지요. 우취우눈은 일찍이 프랑스에도 전해졌답니다. 크루아상과 마카롱을 보면 알지요.” 슈징씨가 알려준 우취우눈은 우리의 ‘겉바속촉’이었다.
슈징씨가 붕어빵 ‘인증샷’을 찍는 동안 쾌활해 보이는 일본 여성이 들어왔다. 사장님이 반갑게 일본어로 인사했다. “곤니치와? 마유리상” 동해바다 건너편 이시카와현에서 왔다는 마유리상에게도 붕어빵 맛을 물었다. 그녀는 한국어가 유창했다. “한국에 붕어빵이 있다면 일본엔 ‘타이(鯛)야끼’가 있지요. 맛은 붕어빵이 타이야끼보다 더 바삭바삭한데, 몸집은 타이야끼가 더 통통합니다. ‘타이(鯛)’는 한국어로 도미지요.” 이웃 나라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더 알려주고 싶어 함께 근처 가게에 가서 ‘달고나’도 시식하게 했다. 그들은 달고나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온 설탕 과자라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들과 후일을 기약하고 붕어빵집으로 돌아왔다. 사장님은 빈 틀에 다시 반죽을 붓고 계셨다. “사장님, 왜 반죽을 빵틀에 넘치도록 부으시나요?” “하하, 잘 보셨네요. 반죽이 틀 밖으로 흘러나와 구워지면 구수한 냄새를 풍깁니다. 손님을 부르는 저만의 노하우지요.” 사장님은 웃으시며 시식용 붕어빵을 건넸다. 바나나 향이 났다. 사장님께 더 신경쓸 점은 뭔지 여쭈었다. “많은 외국인이 이 일대를 찾습니다. 구한말에는 중국인,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과 인연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이 번거롭게 휴대폰 번역기를 돌리느니 차라리 제가 중국어로 소통하는 쪽이 낫겠다 싶어 통신 수업으로 중국어를 좀 공부했죠. 요즘엔 기초지만 일본어도 시작했고요.”
붕어빵 가게 유 사장님을 통해 능력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었다. 능력은 경험에 부단한 노력이 더해져야 생긴다. 과거의 기록인 학력(學歷)에 안주하지 않고 늘 고민하고 부대껴야 진정한 학력(學力)을 얻고 능력자가 될 수 있다. 유심히 보면 우리 주변에도 제2, 제3의 유 사장님들이 있다. 얼마 전 한 기업이 ‘채용 시 학력을 따지지 않겠다’고 했다.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학력(學歷)’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