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들의 보금자리 명진들꽃사랑마을

명진소식

  • HOME
  • 우리들의 이야기
  • 명진소식
2026.07.15 - 문학산책 ( 화가의 마음 )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6-07-16 11:07:40
  • 조회수 202

 

[ 문학산책 ]

 

제 목 – 마음읽기 – 한 점을 찍는 화가의 마음으로

기 고 – 천운영 소설가

 

 

집을 잘 살펴봐달라는 집주인의 당부 중에 감나무가 우선순위였다. 벌레가 생기거나 잎이 얼룩덜룩해지면 방제를 부탁한다고, 감나무를 위한 예비 비용까지 미리 주고 갔다. 뭐 그렇게까지 애지중지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자리만 차지하고 볼품없는 수형에, 열매라고 해 봐야 한두 바구니 나오려나, 그나마도 오고 가는 새들에게 내줄 뿐, 먹잘 것 없는 나무에 불과했다.

 

이사 온 지 삼 년 만에 감나무에 문제가 생겼다. 봄에 감꽃이 유난히 많이 떨어진다 싶었는데, 누런 이파리가 한두 개 눈에 띄더니 며칠 만에 마른 가지가 늘고 여기저기 거미줄 같은 투명한 막이 끼었다. 드디어 예비 비용을 쓰는 날이 오는구나. 방제업체를 불렀다. 나무 한 그루에 20만원. 일 년에 네 번 정도가 좋다는 게 업체 측의 조언. 방제 비용으로 감을 사 먹는다 치면, 일 년 내내 감만 먹고 살아도 되겠다, 머릿속에서 절로 계산기가 두들겨졌다.

 

시원하게 약제 샤워를 마친 후,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바로 송충이. 하얗게 털을 세운 송충이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이었다. 사체가 아니라 살아 꿈틀대는 송충이가,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찔거리게 되는 그 송충이들이, 후둑후둑 떨어져 몸을 비틀고 꿈틀거리고 사방을 기어 다니는데,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아이고 나방은 어쩌다 애지중지 감나무에 알을 까 가지고 이 수난을 겪는 것이냐. 이왕이면 인적 드문 야산이나 들판의 감나무를 찾을 것이지. 안타까움은 잠깐. 살아남은 송충이들이 건물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쓸고 날려 보내고 물청소를 하고, 박멸을 위해 한나절을 꼬박 보냈다. 너무 가혹하다 탓하지 마라, 해충으로 분류된 곤충 아니더냐, 알리바이를 만들면서.

 

그런데 감나무와 맞닿아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들은 왜 그렇게 멀쩡하지? 미국흰불나방 애벌레들은 감나무만 좋아하고 은행나무는 싫어하나? 환경 변화나 해충에 강해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더니 과연. 2억7000만년을 살아남은 은행나무가 그깟 송충이 공격쯤이야.

 

집에서 나와 한강공원 출입구까지 500m 남짓. 산책길에 한 번 세어보니, 길 양편으로 모두 123그루가 심겨 있다. 성인 보폭으로 대여섯 걸음마다 한 그루. 여름엔 선선한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엔 그야말로 황금빛 융단길을 만든다. 주로 집안에서만 지내는 나를 한강까지 이끄는 일등 공신. 감나무와 더불어 나의 심신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지난해인가 사거리에 플래카드가 붙었다. 악취 풍기는 은행나무 가로수 대체 추진. 가을이면 은행 열매와 낙엽으로 인한 생활 불편 민원이 넘쳐난다더니. 낙엽을 치우는 사회적 비용과 주민들의 불편을 고려한다면, 기껏 몇 블록 이어진 도로의 은행나무쯤이야 치워 없애버리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 거기에 대고 은행나무길을 훼손시키지 말라 주장할 명분이 없었다. 보호수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된 것도 아니고, 고만고만한 은행나무길을 두고 웬 극성이냐 할 테니까. 그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최근에 한 미술관에서 독극물을 주입해 은행나무를 고사 직전에 이르게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사 오기 전 십여 년 살았던 동네라 골목골목 잘 아는 곳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과연 실제로 벌어진 일이 맞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무뿌리로 인해 미술관 담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살아 있는 나무에 독극물을 주입한다?

 

다름 아닌 김환기 이름을 내건 미술관 아닌가. ‘흐르는 강, 내가 오르던 산, 돌, 풀 포기, 꽃잎…. 실로 오만 가지를 생각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하며 점을 찍었다’던 화가 아닌가. 효용가치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많이 찍을 필요도 없었을 테지. 김환기의 호는 수화. 그야말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 저세상의 화가와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은행나무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나.

 

비루한 감나무 하나에도 마음을 쓰고, 감나무를 살리느라 떼죽음 당한 해충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멀쩡히 살아 있는 나무에 독극물을 주입하는 그 마음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 줄 알고. 송충이로 태어나봐야 감잎 은행잎 하나의 귀중함을 알게 될까. 점 하나를 찍는 화가의 마음을 알 수 있으려나.

 

 

목록





이전글 2026.07.08 - 문학산책 ( 미다스의 손 )
다음글 2026.07.22 - 문학산책 ( "저 외로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