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들의 보금자리 명진들꽃사랑마을

명진소식

  • HOME
  • 우리들의 이야기
  • 명진소식
2026.05.13 - 문학산책 ( 빽 차 타던 소년 )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6-06-05 10:17:43
  • 조회수 183

 

[ 문학산책 ]

 

제 목 빽 차 타던 소년

기 고 이호준 작가

 

 

표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지나가던 여객전무가 내 옆자리 청년에게 요구합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찍 몸을 움츠리고 맙니다. 다행히 청년은 망설임 없이 표를 보여줍니다. 요즘은 무임승차로 적발되면 벌금이 꽤 많다고 하지요? 최고 열 배까지 물린다고 하니 자칫 다른 생각을 했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클 것 같습니다. 검표를 마친 여객전무가 정중하게 인사하고 다음 칸으로 갑니다. 내입에서 휴~,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옵니다.

 

나는 아직도 여객전무가 무섭습니다. 저만치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면 표를 손에 쥐고서도 괜스레 긴장합니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오래전에 저지른 죄 때문입니다. 중학교 1 · 2학년 무렵이었습니다. 나와 친구들은 가끔 빽 차를 이용했습니다. 표를 끊지 않고 기차에 몰래 타는 것을 우리는 빽 차라고 불렀습니다. 겨울에 눈이 오면 버스가 다니지 않게 때문에 삼십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손발이 꽁꽁어는 추위에 아이들이 그 먼 길을 걷는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추운날은 하굣길에 기차를 탔습니다.

 

하지만 산골에 사는 아이들에게 기차가 만만한 교통수단은 아니었습니다. 멀리 돌아가는 것은 물론 중간에 버스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교통비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머니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는 우리는 결국 빼 차를 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빽 차를 이용하는 방법은 별로 복잡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표를 끊어 개찰구로 나갈 때 우리는 저탄장으로 숨어듭니다. 그 당시만 해도 화물열차를 이용해서 무연탄을 많이 실어 날랐기 때문에 어지간한 역에는 시커먼 탄가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인부들만 다니는 길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 길을 통해 들키지 않고 플랫폼까지만 가면, 빽 차를 타기에 절반은 성공하는 겁니다.

 

물론 기차를 타고 가는 중간에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언제 여객전무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객실로 들어가지 않고 객차와 객차 사이의 공간에서 머물렀습니다. 당번을 정해서 양쪽 객실을 감시하는 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내릴 때까지 무사한 날이 많았지만, 운이 살짝 비껴간 날은 손에 펀칭기를 든 여객전무가 저만치서 나타났습니다. 성냥갑보다 작고 딱딱한 기차표를 쓸 때였는데 검표하면서 표에 구멍을 뚫어 줬습니다.

 

여객전무가 나타나면 우리는 조금씩 뒤로 밀려났습니다. 다행히 그때는 전수 검표를 했기 때문에 급하게 쫓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밀려나다가 열차의 맨 마지막 칸에 닿을 무렵이면 내릴 정거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운이 안 좋은 날은 쫓기다가 화장실에 숨거나 (최악인 날은 화장실까지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현장에서 잡히기도 했습니다. 무협지를 좋아하던 선배 하나는 기차가 언덕을 올라가느라 헐떡거릴 때 뛰어내렸다고 해서 꽤 오래동안 전설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면 역사 밖으로 나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기차역의 담이라 봐야 나무를 듬성듬성 심어놓은 게 전부니 그 당시 우리가 쓰던 언너대로 말하자면 개구멍치기로 여정은 끝났습니다.

 

추억처럼 이야기하지만,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하지만 그 역시 범법행위였으니까요, 스릴을 즐기려는 치기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큰소리칠 자신도 없고요, 그 벌을 받느라 지금까지도 여객전무를 보면 긴장하는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으면 편히 못 산다는 의미를 나이를 먹어가면서야 온전히 깨닫고 있습니다. 기차를 더욱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속죄해야겠습니다.

 


목록





이전글 2026.05.06 - 문학산책 ( 꽃 피울 계획 )
다음글 2026.05.27 - 문학산책 ( 오월의 어느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