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산책 ]
제 목 – 경남남해 다랭이 마을
기 고 – 진우석 여행작가
봄이 층층이 쌓인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 유채꽃, 마늘, 가득 설흔 산엔 얼레지. 봄이 층층이 쌓인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 유채꽃, 마늘, 가득 설흔 산엔 얼레지. 은봉산엔 진달래. 마을 앞바다 눈에 담고 멸치 쌈밥.
4월 여행지로 하나만 꼽으라면 무조건 경남 남해다. 고목에서 벚꽃이 팡팡 터지고, 다랑논에서 유채와 마늘이 넘실거린다. 산에는 탐스러운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갯마을은 쪽빛 바다를 품고 빛난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누리려면 가천 다랭이마을로 오시라. 마을 뒷산인 응봉산(471.5m)과 설흔산(481.7m)을 넘나들다 보면 어느새 품 안에 봄이 한가득할 테니.
남해는 조선 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조선 전기 유학자 김구(1488~1534)는 남해를 ‘한 점 신선의 섬(一點仙島)’이라 불렀다. 자신의 불행한 처지조차 잊게 하는 신비로운 섬이 남해가 아니었을까.
빨간색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건너면서 여행은 시작된다. 먼저 들른 곳은 남해대교 옆의 ‘남해웰컴센터’다. 남해 관광 캐릭터 ‘나매기(남해에 온 거북이)’ 인형이 옥상에서 반긴다. 캐릭터 인형 뒤로 남해대교와 바다가 내다보인다. 잠시 벤치에 앉아 ‘바다멍’을 즐겼다.
평년보다 일찍 핀 벚꽃의 환영을 받으며 남해 시내를 거쳐 가천 다랭이마을에 닿았다.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 도로 옆 전망대에 올랐다. 산과 마을,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 풍광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가파른 산비탈에 곡선형 다랑논이 108층, 680여 개 자리한다.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각인 논에는 마늘이 쑥쑥 자라고, 유채꽃이 넘실거린다.
전망대 뒤로는 거칠고 웅장한 응봉산, 설흔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다랭이마을은 천연기념물과 명승으로 지정되며 진작에 유명해졌지만, 마을의 수호신인 응봉산과 설흔산은 미처 알려지지 않았다.
마을로 들어서면 가천 암수바위가 반긴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남몰래 밑에서 기도를 올리면 득남한다는 이야기가 퍼져, 타지에서도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한다. 암미륵은 잉태한 여인이 만삭이 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암수바위에서 내려가면 허브 꽃밭과 정자를 만난다. 주변에는 유채꽃이 이제 막 피기 시작했다. 정자 앞으로 이어진 길이 남해바래길 본선 10코스 앵강다숲길 시작점이다. 꽃길 따라 쪽빛 바다를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오전 5시20분쯤 다랭이마을의 민박집을 나왔다. 간만에 달무리가 져 비가 오려나 걱정했지만, 별이 초롱초롱하다. ‘딸깍’ 헤드 랜턴을 켜고 길을 나섰다. 더듬더듬 어두운 산길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딘다. 30분쯤 지나 안부(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에 올라섰다.
설흔산 등산로는 거친 암벽을 우회해서 길이 나 있다. 울창한 소사나무 숲을 통과하자 성채처럼 돌로 쌓은 봉수대가 떡 버티고 있다. 봉수대에 올라 일출을 기다린다. 바다 쪽으로 미세먼지가 뿌옇다. 잠시 붉은 기운이 맴돌다가 남해 금산 너머로 불끈 해가 떠오르자, 소사나무 가지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응봉산으로 가는 내리막길 산비탈에서 얼룩얼룩한 것이 자꾸 눈에 밟힌다. 야생화 얼레지다. 산비탈에 보랏빛 얼레지가 지천이다. 이렇게 너른 군락도 드물다. 도톰한 큰 잎과 날렵한 꽃봉오리를 쓰다듬고 길을 나선다.
능선길은 완만하고 부드럽다. 땅에서 봄기운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하나둘 진달래가 보이기 시작하면, 응봉산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능선 양쪽 벼랑으로 진달래가 불타오른다. 꽃에 취해 생각보다 쉽게 응봉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 남쪽, 가천 다랭이마을 쪽으로 진달래가 그득하다. 산에서 만난 진달래는 늘 위로가 된다. 나도 모르게 오래된 시구를 읊조리게 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응봉산에서 다랭이마을로 하산할 수 있지만, 짜릿한 암릉이 펼쳐지는 칼바위능선을 따라 선구마을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다. 지금까지의 산행은 쉬웠던 편이고, 칼바위능선은 아무래도 까다롭다.
정상을 출발하면, 크고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어 길이 울퉁불퉁하다. 20분쯤 가면, 시야가 열리면서 수직 절벽 위를 걷게 된다. 칼바위능선이 시작됐다. 왼쪽으로 바다가 넘실거리고, 오른쪽으로는 건너편 고동산~장등산 능선이 펼쳐진다.